학교 교육의 한계성
학교는 학생에게 문화유산을 조직적·체계적으로 전승시키는 곳이자 각자가 적성을 찾아 키워 나감으로써 개성을 실현하며, 나아가서 사회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나가게 하는 곳이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학교는 유능하고 재능 있는 청소년들을 분류 · 선발하여 그들의 사회적 · 경제적 배경과는 상관없이 그들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신분까지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것이 바로 학교 교육에 대한 기능주의 이론에 기초한 낙관론적 관점이었다.
기능론에 입각한 학교 교육의 기능은 첫째로, 학교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분류하고 선발하는 합리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어 가장 능력 있고 동기가 충만한 사람들이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획득하게 해 주었다. 둘째로, 학교는 지식과 전문적 소양을 중시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러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각종 지적 기술과 규범을 가르친다고 본다.
이 이론은 학교가 청소년들에게 사회의 합의된 가치를 전달하는 동시에 점점 복잡해지고 전문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분류하고 선발하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제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학교가 오늘날 사회문화의 급격한 변동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급지론 적 관점에 서 있는 일리치(Ivan Ill ich)는 현대의 교육제도가 인간성의 파괴를 촉진하고 근대화 속의 빈곤을 조장하고 있다고 탈학교화를 주장한다. 물론 탈학교화는 학교 제도 자체를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학교로서의 본질적 기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현대 학교 교육의 모순성과 문제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비슷한 연령구조를 갖고 있는 청소년들을 교육 대상으로 하는 학교 교육기관은 특수한 사회 · 문화적 가치, 규범, 성향을 지닌 청소년들이 동일한 양식으로 적응할 수는 없다. 적응의 속도는 개개인의 신체적 ·사회적인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정신적·지적 능력, 타인으로부터의 기대, 일상적 삶의 경험적 차이들에 관련된 변인들 역시 학교문화 체제에 대한 개인의 적응 속도를 서로 다르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학교 현장은 개인적인 차이보다는 학생이라는 보편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개인의 적응 속도와 개인차가 획일적으로 무시된다.
둘째, 사회의 질을 과학기술의 발달 정도로 규정하려는 일반 경향을 추종하는 학교 교육이 교육 본래의 목표인 인간다운 인간 양성에 소홀하기 있기 때문이다. 기술과 직업, 돈과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학교 교육 경향이 전통 교육에 비해 도덕이나 윤리 또는 인간 교육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즉, 현대 학교가 인간 교육에 실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셋째, 현대 학교가 기존 사회 보존에 지나치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근대국가 성립 이후 소위 국가이념이나 국민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존 질서유지를 위한 획일적인 통제의 경 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것은 아직 민주국가로서 완성되지 못했거나 독재성이 강한 통치자에 의해서 이용당하는 경향이 없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나 교육의 자율성이 올바로 유지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이 된다.
넷째, 학교 교육기관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사회적 · 경제적 상류계층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현상은 하류 계층의 자녀가 타고난 능력과 관계없이 하급 사회계층에 머물게 되는 비인도적 모순을 초래한다. 이것은 서민 대중을 위한 교육적 기회 확대를 위하여 보다 과감하고 정의로운 국가정책에 의하여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학교와 교육자가 교육적 양심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학교 교육기관에서 발견되는 교육과정 운영의 문제점과 학교 교육의 무력을 지적할 수 있다. 학교에서 취급하고 있는 교과의 지식 중에서 상당한 부분에 있어서 잘못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잘못된 내용의 투입은 정치권력의 입장에서 의도적으로 계획할 수도 있고, 지식을 다루는 학문적 견해의 차이에서 나타날 수도 있으며, 그런 일은 지식의 간추림 과정에서 야기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왜곡된 지식은 저자의 편견에 의해 전달될 수도 있다.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지식의 내용, 전달 과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견해는 역사적으로도 타당하다. 예컨대, 일본은 한국과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를 왜곡시킨 교과서를 학교 현장에서 그들의 후손들에게 가르쳐 왔다.
또한 학교가 현대 사회에서 각종 과학기술의 발달과 생활방식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학생으로 책임지기에는 그 시설과 방법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지식뿐만 아니라 청소년의 가치관, 태도, 의식에 영향을 주는 것은 학교의 방침이나 교사의 가르침보다 대중매체가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즉, 비형식적 교육매체에 의한 학교 교육의 무력적 지적하는 주장이 팽배하고 있다.
여섯째, 학교 교육의 성패를 좌우하는 교사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저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사가 선생 또는 스승으로서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 지역사회의 지도자로서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함은 교육의 성공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사회의 변화와 가치관의 혼돈에 의하여 교직에 대한 매력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학력과 인격 면에서 우수한 위치에 있어야 할 교사가 한갓 보통의 직업인 수준으로 저하되고 있다면, 학교 교육을 통한 인간 개조나 사회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당연한 논리가 학교 교육의 무용론으로 나타나게 된다.